그때의 일본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 일본이 아직 '미래의 나라'였던 시절
저녁이 되면 거리는 TV 불빛으로 가득했고, 백화점 쇼윈도에는 새 옷이 진열되었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가정으로 배달되는 가전제품, 방에 놓인 음향기기. 거리도 생활도 조금씩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 갔다.
1980년대 일본은 현재와는 다른 형태로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었다.
지금 일본 하면 떠올리기 쉬운 것은 애니메이션, 만화, 음식, 관광, 전통문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자동차, 가전제품, 반도체, 카메라, 음향기기, 게임 등 공업 제품과 기술의 나라로 여겨졌다.
고장 나지 않고, 정밀하며, 성능이 높다.
일본 제품은 전 세계 가정과 거리로 파고들어 '일본'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알렸다.
일본의 산업, 교육, 행정, 기업 경영에서 미국이 배워야 한다는 논조가 나타났다. 이는 당시의 분위기를 상징한다.
물론,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일본을 똑같이 보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서구의 경제 및 산업 맥락에서는 일본이 종종 '앞으로의 나라', '미래적인 나라'로 언급되었다.
한편, 일본 거리에서는 해외 문화가 차례로 유입되고 있었다.
영화관에서는 미국 영화가 상영되고, 라디오와 음반 가게에서는 서양 음악이 흘러나왔다. 잡지에는 유럽 브랜드 의류가 실렸고, 젊은이들은 아메리칸 캐주얼, 아이비, 밀리터리, 펑크, 힙합과 같은 해외 스타일에 관심을 가졌다.
해외여행, 수입 잡지, 외제차, 양주.
당시 일본에서는 해외 문물을 아는 것 자체가 풍요로움과 새로움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일본은 해외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만은 아니다.
해외에서 들어온 옷이나 음악, 상품과 가치관은 일본의 생활, 유통, 거리의 분위기, 소비자의 감각에 맞춰 조금씩 형태를 바꾸었다. 서구의 요소를 받아들이면서도 일본 고유의 색상, 실루엣, 소재감, 스타일로 재구성해 나갔다.
그것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었다.
세계를 보면서 일본 안에서 다른 것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1980년대 후반이 되자, 도시의 풍경은 더욱 화려해졌다.
백화점, 브랜드 숍, 카페 바, 디스코, 호텔, 고급 자동차, 도시형 광고. 밤거리에는 불빛이 늘었고, 소비하는 것이 미래로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만, 그 화려함이 일본 전국에 고르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도시 지역, 젊은 층, 기업 사회, 일정 소득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확산된 현상이었으며, 지방이나 일반 가정의 생활까지 모두 거품경제였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에 기술과 소비가 스며든 시대임은 분명했다.
새로운 TV가 집에 도착하고.
소리 좋은 스테레오가 놓이고.
게임기가 가정에 들어오고, 거리에는 새로운 건물이 늘어갔다.
당시 사람들에게 그것들은 '레트로'가 아니었다.
눈앞에 나타난, 틀림없는 미래였다.
해외 또한 일본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일본 자동차는 해외 도로를 달렸고, 일본 가전제품은 가정에 놓였으며, 일본 카메라와 음향기기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게임기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걸쳐 해외 가정용 게임 시장에서도 큰 존재감을 가졌다.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 문화가 세계로 퍼져나갔다기보다는, 먼저 일본 제품이 세계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었다.
패션 세계에서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확산되었다.
1980년대 초부터 일본 디자이너들은 파리를 중심으로 하는 해외 패션계에서 강한 주목을 받았다. 기존 서구적 미의 기준과는 다른 실루엣, 구조, 색상, 소재 다루기는 패션 업계에 충격을 주었다.
다만, 그 영향이 곧바로 해외 일반 대중의 의류로 확산된 것은 아니다. 평가는 먼저 디자이너나 편집자, 업계 관계자 등 패션의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애니메이션, 만화, 하라주쿠 스타일, 로리타 등 일본발 서브컬처가 해외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좀 더 후의 일이다.
일본은 많은 분야에서 앞서 나갔지만, 그것이 그대로 세계 표준이 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일본의 휴대폰은 독자적으로 고도한 진화를 이루었다.
카메라, 모바일 메일, 이모티콘, 휴대폰 인터넷, 모바일 결제, 적외선 통신, 원세그. 현재의 스마트폰으로 이어지는 많은 기능들이 일본 국내에서는 일찍부터 실용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구조는 일본 국내 통신사, 단말기, 서비스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일본 시장은 커서 국내만으로도 사업이 성립했다. 국내 이용자에 맞춰 세밀하게 만들수록 해외 통신 규격이나 서비스와는 멀어졌다.
기술이 낮았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내에 맞춰 너무나도 완성되어 있었다.
이윽고 스마트폰 시대가 되자, 해외 기업이 제공하는 공통적인 시스템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일본 휴대폰은 많은 첨단 기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공통의 토대가 될 수 없었다.
훗날 '갈라파고스화'라고 불리는 현상은 단순히 뒤처진 것이 아니다.
일본 안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기술과 세계 표준 사이에 생긴 격차였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의 일본은 해외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일본 내에서만 완결되었던 것도 아니었다.
일본은 해외 영화, 음악, 옷, 자동차,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해외는 일본의 자동차, 가전제품, 게임, 기술을 받아들였다.
서로의 문화와 제품이 오가는 가운데, 일본은 해외 유래의 것을 자국의 감각으로 재창조하고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시켜 나갔다.
그 관계는 단순한 '일본이 세계를 지배했다'는 이야기도 아니었고, '해외가 일본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일본은 제품과 기술로 강하게 주목받았다.
일본은 해외 문화를 강하게 추구했다.
해외도 일본 제품을 생활 속에 받아들였다.
다만, 제품, 기술, 패션, 서브컬처에서는 확산 속도나 수용 방식이 달랐다.
당시 만들어진 옷에도 그 시대의 관계가 남아 있다.
서구 패션을 연상시키는 디자인.
일본 고유의 색상 조합이나 전체 무늬.
정교한 봉제.
광택 있는 소재.
지금은 만들기 어려워진 실루엣과 원단.
그것들은 단지 낡은 옷이 아니다.
해외를 보면서 일본 안에서 재창조된 것.
세계가 일본을 미래적인 나라로 보았던 시대에, 일본 국내에서 탄생한 것.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의 일본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하지만 그 시대가 남긴 옷이나 제품을 손에 들면, 당시 사람들이 보았던 미래의 일부를 지금도 느낄 수 있다.